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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MBC뉴스]R아침용]유교현판이야기 32편-농암종택 애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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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동MBC NEWS 작성일18-06-24 00:00 조회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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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4 12:58:38 작성자 : 이호영

□ 애일당(愛日堂)

유교현판 이야기:
오늘부터는 선비들의 자기 정화와 수양,
그리고 여유와 풍류의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는 ‘누정(樓亭)’의 현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조선 중종 때 문신
농암 이현보 선생이 부모 봉양을 극진히 하기 위해 지었던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 있는
‘애일당愛日堂’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애일당’은 농암 이현보 선생이 1512년
46세 때 분강 기슭 귀먹바위 위에 지었으며
그 뒤 1536년 67세 때 94세의 부친(李欽)과
92세의 숙부, 82세의 외숙부 김집(金緝) 등을 중심으로 ‘애일당 구로회(九老會)’를 만들고 효성을 실천했던 곳입니다.

1548년에 중창과 조선 후기에 개축하였으나 1975년 안동댐 건설로 원래의 위치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옮겨졌다가 2005년에 농암유적지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이곳 도산면 가송리로
이건하였습니다.

농암 선생은
32세 때 문과에 급제한 뒤 1542년 76세까지
약 44년간 4대를 섬기면서 벼슬에 종사하였습니다.

특히 그의 삶에 있어 특기할 점은 효성의 실천이었습니다.

어버이의 봉양을 위해 7~8차례나 외직의 지방관을 자청하였고, ‘애일당’을 지어 아우들과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피워서 어버이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렸으며, 1519년 53세 때 안동부사 시절 부(府)내의 남녀 귀천을 막론하고 80세 이상의 노인들을 초청하여 ‘화산양로연(花山養老燕)’을 베풀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향중의 70세 이상의 노인들을 초대하여 ‘애일당구로회(愛日堂九老會)’를 만들어 경로(敬老)사상을 실천하였습니다.

뒤에 보이는 "애일당’에서 ‘애일’의 의미는 논어 이인(里仁) 편에 공자는 “부모의 나이를 알고 있지 않으면 안 되니,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두렵다[子曰 父母之年 不可不知也 一則以喜 一則以懼]고 한데서 인용하였습니다.
그 주석에 주자는 “부모의 나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하루 하루 아끼는 정성[愛日之誠] 을 그만 두지 못한다고 한 데서 그 뜻을 취했습니다.

애일당 편액은 자식이 부모에 대한 희구지정(喜懼之情)을 말한 것으로서 어버이를 대하는 효자의 마음을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농암 선생에게 있어서 ‘효(孝)’는 바로
자신의 일관된 삶의 지향이었고, 대대로 가문에 지켜져 내려와야할 규범[世守之規範]’이었으며, ‘ 애일당’은 바로 그 효를 실천했던
삶의 산실이었습니다.

농암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평생 사업을
평가하여 내려준 '효절(孝節)’의 시호야말로 농암 선생의 일생을 잘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효성이 희박해져 가는 오늘에 ‘애일당’에
올라 그 편액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유교현판 이야기, 한국국학진흥원의 권진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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